서점 수학 코너에 가면 표지에 '최상위', '심화', '경시'가 붙은 문제집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 있습니다. 저도 그 앞에서 오래 서성이다가 결국 한 권을 샀습니다. 아이 실력보다는 제 조급함으로 산 책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첫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고, 몇 달 뒤 두 번째 시도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두 시도의 차이가 곧 심화 문제집의 적정 시기에 대한 답이었기에, 그 기록을 남깁니다.
첫 시도: 세 문제에 40분, 그리고 눈물
처음 심화 문제집을 펼친 날, 아이는 세 문제를 푸는 데 40분이 걸렸고 세 문제 다 틀렸습니다. 둘째 날은 책을 펴기도 전에 표정이 굳었고, 사흘째에는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어려운 문제를 고민하는 힘을 기르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사실 아이는 고민하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그 책을 덮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니 실패 원인은 명확했습니다. 당시 아이는 기본 문제집 정답률도 들쭉날쭉했습니다. 기본기가 안 굳은 상태에서 심화를 들이민 것은, 계단 두 개를 건너뛰고 네 번째 계단으로 뛰라고 한 것과 같았습니다.
몇 달 뒤 두 번째 시도: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 사이 저희는 연산 분량을 조절하면서 기본 문제집 정답률을 안정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두세 단원 연속으로 정답률이 90%를 넘고, 틀린 문제를 답지 없이 스스로 고치는 상태가 되었을 때, 심화를 다시 꺼냈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첫째, 정답률이 안정된 단원만 심화로 들어갔습니다. 둘째, 하루 두세 문제만 풀었습니다. 셋째, 못 풀어도 괜찮다고 미리 말해뒀습니다. "이 책은 틀리라고 있는 책이야. 반만 맞아도 잘하는 거야." 기본 문제집과 채점 기준 자체를 다르게 가져간 것입니다.
같은 아이, 같은 책인데 반응이 달랐습니다. 여전히 틀렸지만 이번에는 "아, 아깝다! 한 번만 더"가 나왔습니다. 버티는 게 아니라 도전하고 있었습니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은 문제집도 아이 머리도 아니고, 들어간 시점이었습니다.
알게 된 것: 적정 시기는 학년이 아니라 상태
"심화는 3학년부터"류의 학년 기준은 저희 집에서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대신 세 가지 상태 신호가 기준이 됐습니다. 첫째, 기본 문제집 정답률 90% 이상이 두세 단원 연속 유지되는가. 둘째, 틀린 문제를 답지 없이 스스로 다시 풀어 고치는가. 셋째, 어려운 문제 앞에서 짜증보다 호기심이 먼저 나오는가. 셋 다 해당되는 단원은 심화로 올라가고, 하나라도 아니면 기본을 더 다졌습니다. 같은 시기에도 단원별로 다르게 적용했습니다. 연산 단원은 심화를 하면서 도형 단원은 기본을 하는 식입니다.
심화를 진행하며 지키는 것들
지금도 유지하는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루 두세 문제 이상 안 시킵니다. 심화 문제는 양이 아니라 한 문제를 오래 붙드는 경험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답지는 다음 날까지 안 보여줍니다. 하루 묵힌 문제를 다음 날 다시 풀어서 해결하는 경험이 심화의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시대회는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언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목표가 대회가 되는 순간 이 시간의 성격이 바뀐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Q. 심화 문제집을 안 하면 손해인가요?
A. 기본이 탄탄한 아이에게는 심화가 좋은 도전이지만, 기본이 흔들리는 아이에게는 오히려 수학 자신감을 깎는 비용이 됩니다. 저희 첫 시도가 그랬습니다. 안 하는 것보다 일찍 하는 것의 손해가 더 컸습니다.
Q. 심화 문제집은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하나요?
A. 서점에서 아이와 함께 펼쳐보고, 첫 단원 문제 열 개 중 아이가 예닐곱 개를 풀 수 있어 보이는 책이 적당했습니다. 절반도 못 풀 것 같은 책은 지금 책이 아니라 다음 책입니다. 유명한 책보다 지금 수준에 맞는 책이 기준이었습니다.
마무리
심화 문제집의 적정 시기를 묻는 질문에 저희 집의 답은 이렇습니다. 몇 학년이 아니라, 기본 정답률 90%와 스스로 고치는 습관과 호기심이 갖춰졌을 때. 그 전까지 심화 문제집은 책장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책에게도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조급함에 산 책이라도 괜찮습니다. 저처럼 몇 달 묵혔다가 제때 꺼내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