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입학하기 전 겨울, 저는 서점에서 1학년 수학 문제집을 세 권 샀습니다.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 때문이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그 세 권은 두 달을 못 갔습니다. 아이는 연필을 잡기 싫어했고, 저는 화를 냈고, 수학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아이 표정이 굳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이 글은 그때 문제집을 전부 덮고, 대신 3개월 동안 식탁에서 했던 놀이 3가지를 기록한 글입니다.
문제집을 먼저 시작하면 생기는 일
지금 돌아보면 실패 원인은 분명했습니다. 아이는 아직 '5'라는 숫자와 귤 다섯 개가 같은 것이라는 감각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집은 처음부터 숫자를 쓰라고 시킵니다. 아이 입장에서 수학은 "뜻도 모르는 기호를 반복해서 쓰는 숙제"가 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수학에 대한 첫인상이었습니다. 초등 수학에서 1학년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진도가 아니라 "수학은 재미있다"는 첫 경험이라는 걸, 저는 아이가 수학을 싫어하게 된 뒤에야 알았습니다.
문제집 대신 식탁에서 한 놀이 3가지
문제집을 덮은 뒤, 따로 공부 시간을 만들지 않고 원래 있던 생활 시간에 수학을 끼워 넣기로 했습니다. 장소는 식탁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1. 수 세기와 나누기 놀이
밥 차릴 때 수저 놓기를 아이 담당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식구 수만큼 놓아줘"로 시작해서, 익숙해진 뒤에는 "젓가락은 몇 짝이 필요할까?"까지 확장했습니다. 간식 시간에는 귤이나 과자를 아이가 직접 나누게 했습니다. "셋이서 똑같이 나누면 몇 개씩이야?" 이 한마디가 사실상 나눗셈의 첫 경험이었습니다. 아이는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가 나누는 역할을 맡는 걸 좋아했습니다.
2. 양 비교 말놀이
두 접시에 과자를 다르게 놓고 "어느 쪽이 더 많아?"를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눈으로만 비교하다가, 나중에는 "몇 개 더 많아?"로 바꿨습니다.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몇 개 더'를 알려면 아이가 머릿속에서 두 수의 차이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바로 1학년 2학기부터 나오는 뺄셈 문장제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걸 나중에 교과서를 보고 알았습니다. 놀이로 하던 것이 그대로 교과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3. 10 만들기 놀이
계란판(10구짜리)에 바둑돌을 넣으면서 "7개 넣었네, 몇 개 더 넣으면 꽉 찰까?"를 반복했습니다. 자기 전 이불 속에서는 손가락으로 했습니다. 제가 손가락 6개를 펴면 아이가 4개를 펴서 10을 만드는 식입니다. 10 만들기는 받아올림·받아내림 계산의 뿌리라서, 이 감각이 있으면 2학년 연산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지금 2학년이 된 아이가 받아올림을 배울 때 실제로 덕을 봤다고 느꼈습니다.
3개월 뒤 문제집을 다시 폈을 때
놀이만 3개월을 하고 나서 미뤄뒀던 문제집을 조심스럽게 다시 꺼냈습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는 문제집 속 그림이 "우리가 하던 놀이랑 똑같다"며 먼저 풀겠다고 했습니다.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 속도 자체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숫자가 기호가 아니라 실제 양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니까, 문제가 곧 놀이의 연장이 된 것입니다.
하루 분량은 두 쪽으로 정했고, 지금까지도 문제집보다 생활 속 대화를 먼저 두는 원칙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Q. 놀이만 하다가 문제집 진도가 늦어지지 않나요?
A. 저도 3개월 내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수 감각이 잡힌 뒤에는 문제집 진도가 오히려 빨라져서, 반년 기준으로 보면 문제집부터 시작한 것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늦어지는 게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아이가 놀이도 하기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요?
A. 저희도 그런 날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넘어갔습니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상황(간식, 좋아하는 과일)에만 슬쩍 끼워 넣었습니다. 하루 걸러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학과 좋은 기억을 연결하는 것이지, 매일 채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무리
1학년 수학의 목표는 문제집 몇 권이 아니라, 숫자를 실제 양으로 느끼는 감각과 수학에 대한 좋은 첫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문제집부터 사서 아이와 씨름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일단 덮고 식탁에서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준비물은 수저, 귤, 계란판이면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