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안 푼 문제집이 여섯 권 쌓여 있습니다. 인터넷 후기가 좋아서, 혹은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산 책들입니다. 몇 장 풀다 만 책도 있고, 아예 펴보지도 않은 책도 있습니다. 이렇게 실패를 반복하다가, 이제는 서점에 가서 30분 안에 판단하는 저만의 순서가 생겼습니다. 이 글은 그 시행착오와, 지금 쓰는 체크 순서에 대한 기록입니다.
돌아보면 여섯 권 중 절반은 같은 이유로 실패했습니다. 유명하다는 이유, 다른 집 아이가 잘 쓴다는 이유로 산 책들이었습니다. 정작 그 집 아이와 저희 아이의 현재 실력이 얼마나 다른지는 한 번도 비교해보지 않았습니다. 문제집은 결국 지금 이 아이한테 맞는지가 전부인데, 저는 계속 다른 기준으로 고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후기만 보고 샀다가 실패한 이유
처음에는 인터넷 후기 별점과 판매량만 보고 문제집을 골랐습니다. 문제는 그 후기들이 다 "이 책 덕분에 성적이 올랐어요" 같은, 우리 아이와는 전혀 다른 조건의 후기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책은 너무 쉬워서 아이가 지루해했고, 어떤 책은 설명 없이 문제만 나열돼 있어서 저 없이는 한 페이지도 못 넘겼습니다. 후기가 알려주는 건 그 책을 산 사람들의 평균적인 만족도이지, 우리 아이에게 맞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지금 서점에서 하는 체크 순서
지금은 서점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딱 세 가지만 확인합니다. 첫째, 표지를 넘겨 첫 단원 문제 열 개를 아이에게 직접 풀어보게 합니다. 대략 예닐곱 개를 풀 수 있어 보이면 합격입니다. 절반도 못 풀 것 같으면 지금 책이 아니라 나중 책입니다. 둘째, 설명 페이지를 펼쳐서 아이가 혼자 읽고 이해할 수 있는지 봅니다. 제가 옆에서 계속 설명해줘야 하는 책은 결국 저 없이는 못 푸는 책이 됩니다. 셋째, 정답과 풀이가 얼마나 친절한지 확인합니다. 틀렸을 때 풀이만 보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어야, 저 없이도 채점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0분이면 충분한 이유
서점에서 30분이면 이 세 가지를 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한 시간 넘게 이 책 저 책 뒤적였는데, 기준이 생기고 나니 오히려 빨라졌습니다. 기준 없이 고르면 표지나 두께 같은 곁가지에 시간을 다 쓰게 되고, 정작 중요한 건 확인 안 하고 사게 됩니다. 세 가지 체크리스트를 순서대로 훑으면, 웬만한 책은 5분 안에 탈락시킬 수 있고 나머지 두세 권을 더 깊게 비교하는 데 남은 시간을 씁니다.
순서도 정해뒀습니다. 첫 단원 문제 풀어보기를 가장 먼저 하는 이유는, 이게 통과가 안 되면 나머지 두 가지는 확인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서점에서 이 순서를 지키면서부터, 예전에는 한 권 고르는 데 썼던 시간에 세 권을 비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준을 세운 뒤 달라진 것
이 기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책장에 안 푼 문제집이 쌓이는 일이 크게 줄었습니다. 완벽하게 맞는 책만 고른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첫 페이지도 못 넘기고 덮는 책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상 못 한 효과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직접 첫 단원을 풀어보고 고르는 과정 자체가, "이 책은 내가 고른 책"이라는 마음을 만들어서 실제로 풀 때 저항이 줄었습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골라주는 것과, 아이가 직접 확인하고 고른 것의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다만 이 기준도 완벽하진 않았습니다. 서점에서는 예닐곱 개를 풀 수 있어 보였는데, 집에 와서 매일 풀리다 보니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확 뛰는 책도 있었습니다. 첫 단원만으로는 책 전체를 완전히 판단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배웠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중간 단원 한두 페이지도 넘겨서 훑어보는 걸 추가했습니다.
또 하나 바꾼 습관은 한 번에 여러 권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예전엔 세일 기간에 서너 권을 한꺼번에 사두곤 했는데, 그중 절반은 결국 안 맞는 책이 되어 책장에 남았습니다. 지금은 한 권을 다 풀고 나서, 그 책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줄 다음 책을 고르는 식으로 한 권씩만 삽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책장에 쌓이는 미완결 문제집은 확실히 줄었습니다.
Q. 온라인으로 살 때는 어떻게 확인하나요?
A. 대부분의 서점 사이트에 미리보기 페이지가 몇 장 제공됩니다. 첫 단원 일부라도 미리보기로 확인하고, 안 되면 목차와 난이도 표기만이라도 비슷한 시리즈의 서점 판매 책과 비교해봅니다. 리뷰에 달린 실제 페이지 사진도 참고가 됩니다. 다만 가능하면 한 번은 직접 만져보고 사시길 권합니다.
Q. 이미 산 책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하나요?
A. 억지로 끝까지 풀리지 않습니다. 저희는 안 맞는 책은 미련 없이 책장으로 보내고, 몇 달 뒤 아이 실력이 올라오면 다시 꺼내보기도 합니다. 처음엔 아까워서 억지로 끝까지 풀리려고 했는데, 그럴수록 아이가 그 과목 자체를 싫어하게 되는 게 더 큰 손해였습니다. 지금 안 맞는 책이 나중엔 딱 맞는 책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무리
문제집 여섯 권을 책장에 세워두고 나서야 얻은 교훈입니다. 후기와 판매량은 참고만 하고, 서점에서 딱 30분, 아이가 직접 첫 단원을 풀어보고 설명을 읽어보게 하는 것. 이 세 가지 체크만으로도 실패하는 문제집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문제집을 사러 가시기 전에, 이 체크리스트를 한 번 사용해보시길 권합니다. 서점에서 30분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안 맞는 책 한 권 값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한 투자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