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방학에는 나름대로 근사한 계획표를 만들었습니다. 과목마다 색깔도 다르게 칠했고, 수학은 매일 오전 한 시간으로 정했습니다. 문제집도 방학용으로 새로 준비했습니다.
그 계획은 사흘 정도 갔습니다. 늦잠을 자거나 외출 일정이 생기면 오전 공부를 건너뛰었고, 한 번 밀린 분량은 다음 날로 넘어갔습니다. 방학이 끝날 무렵 문제집을 펼쳐보니 앞부분만 열심히 풀고 뒤쪽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올해는 작년처럼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수학 공부를 하루 30분으로 줄이고, 한꺼번에 하지 않고 10분씩 나눴습니다. 아직 방학 전체를 마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첫 주에는 작년보다 훨씬 덜 부딪히면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을 잡아놓으니 시작부터 부담이 됐습니다
작년 계획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방학이라는 이유로 공부량부터 늘린 것이었습니다. 학기 중에는 문제집 한 장을 풀던 아이에게 방학이 되자 갑자기 한 시간 공부를 요구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쉬는 방학이 오히려 학기 중보다 힘들어진 셈입니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라고 시간을 정한 것도 저희 집에는 맞지 않았습니다. 방학에는 늦잠을 자는 날도 있고 갑자기 외출하는 날도 있습니다. 정해놓은 시각을 놓치면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까 내일부터 하자”가 됐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몇 시에 할지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을 먹은 뒤, 간식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기 전처럼 원래 하던 생활에 붙였습니다. 시간이 조금 달라져도 순서만 지키면 시작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하루 30분 수학
아침밥을 먹고 연산 한 장
아침에는 학기 중부터 풀던 연산 문제집을 한 장만 풉니다. 방학이라고 두 장으로 늘리지 않았습니다. 한 장이면 아이도 “이것만 하면 끝”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시작을 오래 미루지 않았습니다.
하루 문제집 한 장을 정하기까지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양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간식을 먹은 뒤 틀렸던 문제 몇 개
점심을 먹고 간식까지 챙겨 먹은 뒤에는 1학기 문제집을 다시 펼칩니다. 새로운 복습 교재는 사지 않았습니다. 이미 풀었던 문제 중 표시해둔 것만 골라 하루 두세 문제 정도 다시 풉니다.
어떤 날은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더 풀라고 붙잡지 않았습니다. 복습 시간이 길어지면 다음 날부터 이 시간을 피하려는 모습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녁에는 문제집 대신 수학 놀이
저녁 10분은 공부처럼 운영하지 않습니다. 카드나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과일이나 간식을 나누면서 간단한 수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피곤한 날에는 이 시간은 그냥 건너뜁니다.
세 번 모두 채워야 성공이라고 정하지 않은 것도 작년과 달라진 점입니다. 아침 연산만 한 날도 있고, 외출 때문에 저녁 놀이만 한 날도 있습니다. 대신 못 한 분량을 다음 날 두 배로 시키지는 않습니다.
시간표보다 중요했던 것은 밀리지 않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하루를 빠지면 밀린 공부가 그대로 남았습니다. 다음 날 원래 분량에 전날 분량까지 더하니 아이는 시작하기 전부터 지쳤습니다. 올해는 못 한 날은 그날로 끝냅니다. 다음 날에는 다시 원래 분량으로 시작합니다.
계획을 아이와 함께 정한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연산 한 장은 제가 정했지만, 저녁에 어떤 놀이를 할지는 아이가 골랐습니다. 아이가 싫다고 하는 날에는 억지로 세 시간을 모두 채우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가거나 하루 종일 외출하는 날에는 문제집을 가져가지 않습니다. 이동 중 간판에 적힌 숫자를 읽거나 간식을 나눠 먹는 정도로 끝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다시 한 장부터 시작하는 편이, 밀린 문제집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보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쉬웠습니다.
첫 주에는 일곱 번 중 다섯 번을 모두 했습니다
첫 일주일 동안 세 시간을 모두 한 날은 다섯 번이었고, 나머지 이틀은 두 번만 했습니다. 계획표대로 완벽하게 지킨 것은 아니지만, 작년처럼 사흘 뒤에 전부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아침 연산은 아이가 먼저 문제집을 꺼낸 날도 있었습니다. 공부가 좋아졌다기보다 한 장만 풀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미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학기 예습은 아직 넣지 않았습니다. 우선 1학기 문제집에서 반복해서 틀린 문제를 정리한 뒤, 방학 후반에도 이 흐름이 유지되면 간식 뒤 복습 시간 일부를 예습으로 바꿔볼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복습과 예습을 모두 넣으면 다시 작년 계획표처럼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마무리
저희 집에서는 한 시간짜리 방학 계획보다 10분씩 나눈 시간이 더 오래갔습니다. 계획을 잘 지키는 아이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못 한 날을 밀린 숙제로 만들지 않고, 다음 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바꾼 결과에 가깝습니다.
방학 계획표를 만들 때 자꾸 공부량부터 늘리게 된다면, 학기 중에 하던 양을 그대로 두고 생활 속 세 시점에 나눠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올해 방학이 끝나면 이 시간표가 실제로 어디까지 유지됐는지 다시 기록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