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집 앞에서 아이가 연필을 놓고 물었습니다. "엄마, 이거 왜 배워? 어른 되면 계산기 있잖아." 당황해서 나온 제 대답은 "시험에 나오니까"였습니다. 아이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날 문제 푸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습니다. 며칠 뒤 같은 질문에 이번에는 "나중에 크면 다 쓸 데가 있어"라고 했더니, 아이가 바로 받아쳤습니다. "난 안 쓸 건데." 두 번의 실패 끝에 저는 대답하는 방식 자체를 바꿨습니다. 이 글은 그 기록입니다.
제 대답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
돌아보면 두 대답 모두 아이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그냥 해"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시험에 나오니까"는 수학을 하기 싫은 의무로 못 박는 말이었고, "나중에 쓸 데가 있어"는 초등학생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라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3학년 아이에게 '나중'은 상상이 안 되는 시간이니까요.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그 질문은 반항이 아니라 진짜 궁금함이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답을 주려고만 했지, 아이가 스스로 답을 찾을 기회를 준 적이 없었습니다.
대답 대신 질문을 돌려주기로 했습니다
세 번째로 같은 질문이 나왔을 때, 저는 설명을 포기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 오늘 하루 중에 수학이 어디 있었는지 같이 찾아볼까?" 아이가 잠깐 멈칫하더니 게임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아이가 찾아온 목록은 이랬습니다. 편의점에서 받은 거스름돈, 학교 급식에서 반찬을 몇 개씩 받았는지, 학원 차 도착까지 몇 분 남았는지.
제가 열 문장으로 설명해도 안 되던 것을, 아이가 세 개를 직접 찾아오면서 스스로 납득했습니다. "생각보다 많네"라고 아이가 말했을 때, 이 방식이 맞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녁마다 묻는 질문 하나
그 뒤로 저희 집에는 작은 루틴이 하나 생겼습니다. 저녁에 "오늘 수학 어디서 만났어?"라고 묻는 것입니다. 매일은 아니고 생각날 때 던지는 정도지만, 아이는 이 질문을 위해 하루 종일 수학을 찾아다니는 눈을 갖게 됐습니다. 어떤 날은 "엘리베이터 층수 빼기 했어", 어떤 날은 "게임에서 아이템 개수 계산했어"라고 가져옵니다. 수학이 문제집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 하루 곳곳에 있다는 감각, 그게 "왜 배워?"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었습니다.
이 방식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아이가 답을 스스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제가 준 답은 반박할 수 있지만, 자기가 찾은 답은 반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도 답을 해줘야 할 때
물론 아이가 직접 찾는 것만으로 부족한 순간도 있습니다. 분수나 도형처럼 생활에서 바로 안 보이는 단원이 그렇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지금 당장 쓰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나중에 어려운 걸 배울 때 필요한 계단이야. 계단 하나 빼면 다음 층에 못 올라가거든." 솔직하게 "지금은 안 쓴다"는 걸 인정하되, 왜 필요한지는 말해주는 방식입니다. 아이도 이 설명은 납득했습니다. 억지로 쓸모를 지어내면 아이가 먼저 알아챕니다.
Q. 아이가 "그래도 계산기 있잖아"라고 하면요?
A.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계산기가 답을 알려줘도, 뭘 계산해야 하는지는 네가 정해야 해." 마트에서 두 개 묶음과 낱개 중에 뭐가 싼지 계산기가 알려주지 않는다는 예를 들면 아이가 수긍했습니다. 계산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판단은 사람 몫이라고 말해주는 쪽이 통했습니다.
Q. 이 질문이 자주 나오면 문제가 있는 건가요?
A. 저희 경우에는 질문 자체보다 나오는 시점이 신호였습니다. 유독 힘들거나 지겨울 때 "왜 배워?"가 나왔습니다. 그럴 때는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그날 분량이 아이에게 버거운 건 아닌지 먼저 살폈습니다. 수학을 아예 거부했던 시기를 겪고 나서 생긴 습관입니다.
마무리
"이거 왜 배워?"는 아이가 던지는 가장 정직한 질문이고, 부모가 가장 준비 없이 맞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두 번 실패하고 나서야 답을 주는 대신 찾게 하는 쪽으로 바꿨습니다. 오늘 저녁 아이에게 "오늘 수학 어디서 만났어?"라고 한번 물어보세요. 아이가 가져오는 목록이, 어떤 설명보다 좋은 대답이 되어줄 겁니다.

